2013년 동시 읽는 모임이 겨울에 읽을 좋은 동시15
나무의 장갑 / 선용
밤사이 예쁘게
누가 짜 주었지
손 시린 겨울나무
털장갑 꼈네
어젯밤에 윙윙
그리도 울더니
오늘 아침 손 내밀고
자랑을 하는
겨울나무 털장갑
누가 짜 주었나
발 시린 참새도
만져보고 가고
아이들 눈빛도
머물다 가고
< 조선일보 2013>
꽃비 /하청호
꽃비가 내린다
땅 위엔 하얀 비꽃이
다시 피고
우산도 없이 맨발로
자박
자박
걸어 보자
내 옷은
꽃비에 젖고
내 발은
향기에 젖는다.
<동시집 『꽃비』 2013 파랑새 >
엽서 / 박두순
늦가을 길거리는
엽서 파는 가게
빨강
노랑
엽서들을 가득 내놓았다.
노랑 엽서 한 장 사서
내 앞으로 달려온 바람
발 앞에 던져놓고 사라진다.
옐로우 카드!
가을이 던진 경고장
-덜 익은 너를 빨리 익혀라.
<동시집 『2011 오늘의 좋은 동시』 2011 푸른사상 >
연탄재/구옥순
“얘야, 미끄러질라
조심조심 걸어라.”
언 몸 녹이고
된장국 끓이며
마지막 온기
다 나누어 주고
잘게 부서져
하얀 재가 되어 누웠다.
눈이 와서
꽁꽁 언 자리에
< 『2013 연간집 회보 원고』 한국동시문학회 >
간판 보면 안다/ 권오삼
‘떡뽁이집(떡볶이집)’
‘깍을래 뽁을래(깎을래 볶을래)’
이런 간판은
초등학교 다닐 때
받아쓰기 빵점 맞던 사람의 가게 간판
‘쨍하고 회뜰날(횟집)’
‘아디닭스(닭튀김전문점)’
‘신신꼬 왼발 오른발(신발가게)’
‘이노무스키(스키용품전문점)’
이런 간판은
중학교 다닐 때
장래 희망이 개그맨이던 사람의 가게 간판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안경점)’
‘하얀 종이 위에(미술학원)’
이런 간판은
고등학교 다닐 때
장래 희망이 시인이던 사람의 가게 간판
<『어린이와문학』 2013. 10월호>
그믐날 / 최춘해
그믐날 달력은
그냥은 못 있다.
지나온 발자국이 저절로
되돌아보인다.
자국자국 잘한 일,
자랑스런 일로 이어졌으면
마음이 홀가분하다.
즐겁게 다음달로 넘어간다.
못 다한 일, 못 갚은 일
부끄러운 일로 이어졌으면
발걸음이 무겁다.
다음달 맞기가 겁난다.
<『한국동시문학회 회보 및 연간집 원고』2013>
씨앗들이 먹을 밥/ 김마리아
풀 한 켜 깔고
닭똥 한 켜 넣고.
풀 한 켜 덮고
소똥 한 켜 넣고.
짚 한 켜 덮고
돼지똥 한 켜 넣고.
꾹꾹 눌러
쌓아 놓은 거름 더미.
비 온 뒤
김이 난다, 모락모락.
밭에서 씨앗들이 먹을 밥
따뜻한 밥.
<동시집 『 키를 낮출게』크레용하우스 2013>
아기 까치의 우산 / 김미혜
주룩 주룩 주룩 주룩
까치 둥지에 비가 내려
엄마 까치 날개 펼쳐
아기 까치 우산 되지요.
콩알 같은 빗방울
이마 때려도 엄마는 꿈쩍 않아요.
온종일 비가 내려요
주룩 주룩 주룩 주룩.
< 동시집 『아기 까치의 우산』 2005 창비>
입김 / 김용희
아주 추운 겨울에는
말소리가 눈에 보여
수다를 떠는 대로
촐랑대며 춤추잖아
슬며시
사라지는 건
소리 따라가는 거야
아주아주 추운 날엔
속삭여도 잘 보이지
따끈한 호빵같이
솔솔 피어나는 말꼬리.
그렇지
추운 날 말을 걸면
왜 정겨운지 알겠어.
<동시화집 『내 별에 놀러 와』 청개구리 >
햇볕 사용료 / 김재순
엄마가 햇살에
머리 말린 햇볕 사용료
나뭇가지 살랑살랑
몸 말린 햇볕 사용료
강아지 몸 탈탈 털어
물기 말린 햇볕 사용료
그 많은
햇볕 사용료
누가 다 내나요?
해님이
풀잎에서 손사래치며
아, 그냥 두래요.
<동시집『햇볕 사용료』, 문학과문화 2012 >
무당벌레 / 김바다
일이 안 풀릴 때는
언제든지 찾아와
살풀이굿 해 줄게.
<동시집 『소똥 경단이 최고야!』창비 2007년>
교실에서 / 노여심
예쁜 예지가 욕을 했다
선생님이 안 계신 줄 알고
튀어나온 욕 때문이 아니라
들켜버린 욕 때문에 얼굴이 빨개졌다
"우리 반에서
욕 안 하는 아이는 민수뿐이에요"
친구들과 어울려 놀 줄 모르는 민수만 안 한다는 욕
아이들은 들켜서 놀랐고
선생님은 들어서 놀랐다
< 한국동시문학회 카페 2012>
시루 속 콩나물 / 박예분
캄캄한 방에서
날마다 똑같이 맹물만 먹어도
누구는
감칠맛 나는 비빔밥이 되고
누구는
따뜻한 콩나물국밥이 되고
누구는
아삭한 콩나물무침이 되려고
작은 시루 속에서
우린 샛노란 꿈을 키우지요.
<동시집 '엄마의 지갑에는' 2010 신아)
불낙전골 / 백우선
호주 쇠고기
중국 낙지와 조개
우리나라 채소를
독일 냄비에 넣고
인도네시아 가스로 끓인다.
눈치 보기는 잠시
모두 자기 나라말로
요란들을 떤다.
쏼라쏼라, 촬라촬라,
뽀글뽀글……
잘도 끓는다.
< 계간 ‘시와 동화’ 가을호 2012>
포스트 잇 / 서금복
꼭 할 말만 한다
자기 할 일 다 하면
표시도 없이 떠난다
닮았다!
꽃 위에 앉았다 날아가 버리는
노랑나비 한 마리를.
<동시집 ‘우리 동네에서는’ 2012 문학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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