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나는 누구인가 / 직가 미상

요정맘 2015. 10. 20. 10:10

나는 결코 내가 아니리라

 

남을 따라만 다녔으므로

남을 흉내만 냈으므로

남을 닮으려고만 했으므로

 

남을 따라 달리느라 바빴으므로

남을 따라 몰려다니느라 분주했으므로

 

앞 사람을 뒤쫓느라 정신 없었으므로

뒷 사람을 내치느라 정신 사나웠으므로

 

남의 눈에만 맞추려 했으므로

남의 기대에만 부응했으므로

남의 평가에만 울고 웃었으므로

 

남에게 보이는 나에게만 신경을 썼으므로

남의 겉모습에만 온갖 정성을 다했으므로

 

남의 생각만 논했으므로

남의 일만 따졌으므로

남의 행동만 지적했으므로

 

남이 가진 것만 바라보았으므로

남이 하는 일만 살폈으므로

 

학교에서 배운 것이 다 진짜인 줄 알았으므로

시험 성적이 전부인 줄 알았으므로

세상이 나에게 주입한 것이 다 진실한 줄 알았으므로

보고 듣고 읽은 것이 나를 어떻게 물들이는지 몰랐으므로

뭐든 나를 중동 시키는 것에 빠져 끌려 다녔으므로

 

해야 할 일만 했으므로

필요한 일만 했으므로

긴급한 일만 했으므로

돈 버는 일에만 열중했으므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았으므로

하고 싶은 일을 뒤로 미루기만 했으므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므로

 

허구한 날 시시한 오락거리에 희희덕거렸으므로

연속극의 결말과 주인공의 운명만 궁금했으므로

골 넣고 홈런 치고 매달 따는 선수만 환호했으므로

1명을 위한 99명의 들러리로 살았으므로

 

휘황한 문명에 취해 내 안의 야생을 잊었으므로

도시의 풍요와 편리에 젖어 푹 퍼졌으므로

내 다리를 걷고 뛰고 내 심장을 고동치게 하지 않았으므로

 

내 안을 들여다보지 않았으므로

외로움을 견뎌보지 않았으므로

그리움을 기다리지 않았으므로

고독을 피해 달아만 났으므로

무엇이든 천천히 음미해보지 않았으므로

 

그러니까

내 길을 가지 않았으므로

내 멋에 살지 않았으므로

내 식으로 하지 않았으므로

가슴 뛰는 삶을 실지 않았으므로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으므로

 

그러나 이제 나는 아네

이런 모든 방황이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이라는 것을

마침내 나는 그 질문을 듣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내 안에서 고요히 울리는 질문

거짓 나를 진짜 나에게로 이끄는 영혼의 질문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진품인가, 모조품인가?

나는 원본인가, 복사본인가?

 

나는 아직 나를 모르지만

내 길을 가고, 내 멋에 살고, 내 식으로 하는 걸음 걸음이

나를 넘어 나에게로 가는 가슴 뛰는 삶이라는 것을

이제야 나는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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